존재에 대해서 떠올리면 부존재(무)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고
부존재에 대해서 떠올리면 존재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0에서 1을 떠올리게 되고
1에서 0을 떠올리게 된다.
존재는 곧 부존재를 향해 가고
부존재는 존재를 향해 가니
모든 것이 결국 수렴하지 않고 무한히 0과 1사이에서 진동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도 0과 1사이에서 진동하는 숫자로, 그 삶 또한 끊임없이 진동한다.
따라서 순간 선했다고 영원히 선한 것이 아니요
순간 악한 면모처럼 보였다고 영원히 악한 것이 아니니
우리는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항상 그 선택과 판단을 신중해야 한다.
남에 대한 속단도 하지 말며, 스스로에 대한 과신도 하지 말고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그 성향과 존엄성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태어난 환경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결국 그 존재가 0에서 0까지 가기까지 남긴 궤적이다.
0을 떠올려서 1을 떠올리면
1에서 2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때 1면과 다른 1면을 잇는 붙어있는 부분을 인식하면
3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 3은 어느 각도로나 다른 무의 공간과 맞닿게 되어 결국 무한히 퍼져나가게 된다.
따라서 3을 떠올리게 되면 결국 우주의 무한함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이 무한함을 떠올리게 되면 결국 꽉 참을 떠올리게 되고
꽉 참을 떠올리게 되면 1을 떠올리게 되며
1을 떠올리면 결국 0을 떠올리게 된다.
이로 인해 모든 사고는 서로 대응하며 순환한다.
인간은 길을 가면서 아스팔트 옆의 칸칸이 놓인 긴 벽돌들과 그 수를 인식한다.
모든 것이 붙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으면, 그 옆의 선들의 구분을 통해 인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것은 무수한, 무한한 점의 연속이므로 사실 모든 것은 붙어있다.
제논의 역설과 같이, 만약 인간이 하나씩 정수를 세어나가는 것이라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이 점들을 무한히 세어야 하므로 점과 점이 끝나는 지점을 인식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늦어서 지각해서 달려가면서 벽돌들을 보더라도 그 벽돌의 끝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벽돌이 대략 몇 개 정도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사물을 같은 것을 묶고 다른 것을 나누며 끊어짐과 붙어있음을 시간 소요없이도 한 눈에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왜 그럴까 어릴 적 철학적으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결론을 내자면, 이는 결국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 존재 자체가 0에서 1에서 무한히 순환하고 있고 진동하고 있으며, 그 삶 또한 0에서 1로 계속 진동하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이 진동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깨우친 것이다. 방법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무언가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릴 때 엄밀히 말해 무언가를 바로 머릿속에 띄우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을 비우고 보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상을 띄운다. 이때 0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무한을 인식하는 과정이 일어난다. 바로 무한을 떠올릴 경우 인간의 뇌가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0만을 인식하게 하나, 이를 통해서 무한의 존재가능성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무한의 존재가능성을 떠올린 뇌는 모든 것이 연속되었다고 가정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연속되었다는 관점에서 세상에서 받아온 정보를 빠르게 훑는데, 여기서 모든 것이 연속되었다면 끊어짐이 없어야하는데 툭툭 걸리는 지점이 존재한다. 흰색으로 가득차야하는데 검은 점들이 걸린다. 여기서 인간은 이 검은 점들이 무한이라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 함에도 그 인식을 방해하기 때문에 거슬리게 되고, 이 검은 점들의 갯수를 카운트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순회하면, 뇌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무한이라는 개념을 벗어나기 위해, 전체를 1이라는 개념으로 부여하면서 상의 검정색(뇌가 가상의 이미지에서 led를 꺼놨던 정보)과 흰색(뇌가 가상의 이미지에서 led를 켜놨던 정보)을 반전시킨다. 이로 인해 인간은 카운트 했던 점들의 정보를 중점적으로 포커싱하여 인식하게 되고 카운트한 숫자를 내리받아 인식하게 된다. 프로그래밍으로 말하자면 역으로 회귀를 돌면서 집어넣은 정보의 매트릭스 값을 축을 기준으로 순서를 뒤집거나 0을 1로 바꾸어 정리 후 결과 매트릭스 값을 리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의식하의 여타의 행동들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과부하를 막기 위해 이에 대한 일정부분 망각 혹은 부정의 과정도 거치기 때문에 인간은 이를 평소에는 별로 인지하지 못하며, 본인의 눈으로 세상의 사물을 바라볼 때 의식을 가지고 본인의 의지, 의식의 조절 하에 무언가에 대한 정보를 부담없이 알아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이를 초월한 수없이 많은 처리 과정이 뇌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의식에 들어오는 것은 그 최종 결론들 중의 일부의 취합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갈 지 여부를 묻기 위해 전송된 것이다. 눈을 혹사시킬 때 특히 머리 아픈 이유 또한 이러하다. 이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가장 단적인 예시는 우리가 글씨를 읽을 때이다. 가령 스탠포드 대학교 학술원의 스틀코랜드 정보교육흥진원과 같은 정보를 우리가 읽을 때, 간혹 빨리 읽으면 이를 실제 바르게 적는다고 하는 케이스(사실 만어들낸 정보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와 동일하게 머릿속에서 인지하게 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뇌가 0에서부터 정수를 하나씩 세가는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0이 있어야 모든 처리가 가능하기에 정보의 flush를 하는 것으로, 0을 인식하게 되면 무한을 인식하고, 무한을 인식하고 나서 하나씩 걸리는 부분들을 정리하는 역순으로 연산을 해 더 정보처리 효율을 높인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케이스는 모든 것을 하나씩 카운트하고 그 1/10, 그 1/100...을 들어가면서 n이 계속 곱해져 O(N의 무한 제곱) 만큼의 시간복잡도를 가지고 있다면, 후자는 툭툭 끊어지는 부분만 체크하므로 O(N)만큼의 복잡도를 가지고 있어서 더 효율적이고 빠르다. 단점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을 인식할 때 그 차이가 너무 미세하여 육안으로 잘 안 보이거나 너무 급하게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혹은 몰입하여 뭔가를 빠르게 하다보면 그냥 같은 걸로 인식하고 넘어가 버려서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보다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부 특히 문제풀이를 할 때 오답노트를 해야하는 이유는 장기기억 속에 이러한 차이점을 저장해두어 우리가 급할 때 조차 이것만 일단 체크 한번 더 하고 넘어가도록 하여 다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덜 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왜 하는 지 모르고 복기를 통한 주요한 인과관계 정리 없이 그저 아름답게 장식하고자 오답노트를 쓴다면 그것은 소비자에게 구매를 당한 노트를 만들기 위해 잘려나간 종이의 원재료가 된 나무의 불행이다.
-en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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