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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philosophie >/통찰

마르크스주의의 구조적 한계2

인간은 확률적으로 일부는 선인 일부는 악인으로 태어나고, 우리사회의 교정시설은 이 중 극단적인 악인을 배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만 보장되어도 자연적인 확률로 인해서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배려를 다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점은 유물론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에, 상위층에 있는 선인을 배제하고, 그 사다리를 걷어차버린다. 사실 중세나 근대나 상위층 중 선한 사람들이 악인들을 혐오하고, 하위층의 선한 사람들을 도우려 했기 때문에 지금의 시민사회로 나아올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게 없었더라면 아예 원천적으로 인간 사회는 봉건제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러함으로써 상위층의 선인들 중 고통받는 이들은 없다고 규정하고 배제하고 시선을 돌려버리기 때문에, 하위층의 차별적인 사회 복지 자체는 극빈층의 생활을 개선시켜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겠으나, 그러나 문제는 상위층의 선인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악인으로 바뀌는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된다. 이런 까닭에 유물론에 따른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사회의 가치나, 악인들의 내로남불이나 거짓말이 패시브라는 성질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악인들이 하류층에는 없고 상류층에 있다는 오류를 범하게 되어, 근본적인 선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인 상하류층 어디든 분포한 악인들을 통제하고 제어하여 사회가 선한이들로 가득한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오히려 상류층은 악인 하류층은 선인이라는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키게된다. 그래서 결과론적으로는 그런 사고에 입각해서 사회를 진단한 도식도가 맞게되지만, 그 사회는 계속해서 개선될 수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일시적으로 러시아처럼 민중의 혁명이 일어나서 잠시 개선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게 장기적으로는 필연적으로 폭력이나 악행에 물든 사회가 된다. 하나의 당이나 개인이 위대한 철인일 지라도, 그 사람이 끝나버리면 모든 게 다시 악인들이 상류층에 범람하는 구조로 유지가 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극단주의적인 유물론이 역설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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