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의 세상은 물질주의가 우선이 된 사회이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들의 경우,
자신이 교주가 되어 신생종교를 만들어서 하나의 불법행위의 도구로 삼는 경우도 있다.
이를 사이비라 하는데, 당연히 기존의 종교에서 여러 좋은 가르침이 있으니 누군가를 등쳐먹기 위해
좋아보이는 것들을 골라 담고 그 사이에 슬슬 자신이 세뇌시키기 좋게끔 설계를 짜넣는다.
이러한 사이비의 경우 애초에 영성 자체보다는 사리사욕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에
종교의 탈을 빙자한 악행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특히 사기나 괴롭힘, 각종 불법 행위등이 일어나곤 한다.
이에 사람들은 경계심을 가지고 또한 종교나 신앙을 갖는 행위 자체를 잘 속는 사람들이 하는 것,
멍청한 행위로 비하하는데까지 이르렀고 또한 거리를 두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 시대의 세상에서 그러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과 별개로,
과거 시대의 세상도 물질주의가 우선이 된 사회에서야 볼 수 있는 개념들이
팽배했다는 전제하에서 종교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사회 전체가 물질보다는 가치를 추구하고 영적 가치나 사상에 대한 성찰을 하는 것이
더 우선시 되는 사회였다.
당연히 일반인은 그냥 일상을 살아가지만 가능하다면 영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미덕인 사회로서, 쉽게 설명하자면 그러한 삶을 멋진 삶으로 동경하면서 살아갔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돈을 많이 모은 인플루언서들이 자랑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돈을 펑펑 쓰는 삶들을 인스타에 올리면 그러한 삶들을 일반인들이 직접 다 경험해 보지는 않지만 부러워하고 동경한다고 하면, 과거에는 그 기준 자체가 물질 보다는 가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제 계급이나 여러 종교의 신관들은 사회적으로 상류층에 위치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일종의 법관과 같은 역할도 겸할 만큼 법과 각종 지식등에 해박했고, 실제 고위 귀족들이 그 자제를 종교시설에 보내 의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굳이 물질로서는 종교지도자일 필요성이 없는 위치임에도, 인간과 세계와 인간정신 등에 관해 꾸준히 탐구하고 삶과 죽음 등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갔다는 것이다.
애초에 학자Scholar라는 것도 인류 최대의 종교가 탄생하면서 신이 만든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각종 지식과 탐구를 위해 과학자들과 신학자, 철학자들에게 교구의 온 재산을 투자했기에 개별로는 모으기 어려웠던 자료들이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쭉 모이고 또한 지식과 사유들이 발전하고 축적되는(이는 르네상스가 탄생하기 위한 지식의 영양분이 풍성한 지식적 뿌리들과 그 토양이 된다) 과정에서 이러한 교구 소속 성직자 겸 연구자들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진실되게 신실되게 사후세계와 삶과 인간, 신에 대해 고찰하고 생각하며 살았던 과거의 신앙인, 종교인에 대해서 오늘날과 같이 혼탁하고 물질이 가장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일부 변질된 종교인들의 행태와 같은 선에 두고 비교하는 우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카톨릭이 점점 부패하고 세속 권력에 취함에 따라 개신교가 신앙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며 나오게 되었는데, 다만 개신교가 초기에 뻗어나올 때 극단주의적인 성향이 존재했고,
이에 주변에 반감을 더했는데다가, 그러한 극단주의 성향을 바탕으로 카톨릭 만이 서구의 중심이었던 시대였던 중세를 역사 기록에 있어 극단적으로까지 비하하고 안 좋은 이미지를 매우 깊게 심어버리면서, 도리어 그들의 의도와 달리 종교 자체가 인간을 지배하려는 도구다 같은 이미지를 퍼트리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사회의 물질 위주의 개편이 가속화되면서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도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일부는 있으나 그러나 그것이 진짜 영성을 추구하는 단체인지 아니면 물질을 목적으로 사람을 꼬드겨 등쳐먹으려는 단체인지 의구심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보니, 삶에 치이면서 영성에 관심이 생겼다가도 다시 마음이 냉소적이 되게 되는 경향이 사회에 많이 생겨났다.
실제로 이에 대한 분별이 점차 쉽지 않아지고 있고 사회 경제가 얼어붙을 수록 더더욱 그런 행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기는 하다.
희망이 남아있는 사회라는 게 의도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모두가 영성을 제 1가치로 두고 살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것을 바보같다고 보지 말고, 존중하는 시선을 가지는 태도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을 필요성이 있다.
특히 우리 인격체들을 갈아넣고 매몰시키는 물질주의 사회가 지나치게 극단화 되고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외부적인 시각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사회는 갈수록 내적으로 황폐화되고 삭막하고 메말라지며 결국 큰 시각에서 정책이나 사회적 시스템 등을 돌아보고 개선하지 못하고, 꾸준히 서로를 도구로만 생각하며 갈아넣는데에만 바쁜 형태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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